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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문화저널]빛을 잃고서 희망을 보다 ①
이름 : 조만호
날짜 : 2009-04-14 14:40:09 조회: 1677
 "빛을 잃고서 희망을 보다 - 조만호씨의 삶①

 시각장애1급 조만호씨의 삶①
구두닦이에서 자장면을 뽑으며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08-08-11 14:49:45

누구라도 집을 나서면 목적지를 향해 간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두 발로 타박타박 걸어서 가든지; 버스를 타든지 기차를 탈 수도 있고; 배를 타거나 비행기를 탈 수도 있다. 어떤 수단을 이용하든지 별 탈 없이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탄탄대로로 순항을 한다면 좋겠지만 걸어 가다가 자전거와 부딪힐 수도 있다. 기차가 전복할 수도 있고 배가 풍랑도 만날 수 있으며; 비행기에서 하이재킹(hijacking)을 만날 수도 있다.
 인생항로도 마찬가지다. 바람이 불지 폭풍우가 몰아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어려움이 닥쳐 꼬꾸라지고 자빠져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 걸음걸음마다 피와 땀과 눈물로 얼룩이 지기는 했지만 저 만치 가다가 뒤돌아보니 고통마저도 꿈결처럼 아름다운 행복이더라.

 조만호(52)씨는 부산 사하구 괴정동에서 태어났다. 3남 3녀의 넷째인데 위로 형과 누나가 둘이고 아래로 남동생이 둘이었다. 부모님은 일본에서 결혼을 했고 해방이 되어 고향 강원도에 살았으나 6.25로 부산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아버지는 일본에서의 약간의 사업자금은 벌어 왔으나 사기꾼에게 걸려 홀라당 다 날려 먹었다.

 집안 살림은 말이 아니었다. 하는 수 없이 어머니가 보따리 장사를 시작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무얼 했을까. 외가는 일본에서 나오지 않았는데 제법 잘 살았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처가의 돈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일본과의 왕래가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밀항선을 탔다. 어쩌다가 처가에서 약간의 돈을 얻어오기도 했으나 마누라가 죽든 말든 자식들이 배를 곯는지 마는지 아랑곳 하지 않고 사업을 하네 마네 하면서 돈을 다 날려 먹었다. 그러면 다시 밀항선을 탔는데 처가에는 가보지도 못 한 채 붙잡혀 여수 수용소에서 몇 달씩 살다 나오기 일쑤였다.

 아버지는 있으나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고 어머니는 여섯 남매 키우느라 허리가 휘었다. 보따리를 이고 이집 저집 아무리 열심히 발품을 팔아도 돈은 되지 않아 아이들은 꽁보리밥에 김치 쪼가리가 전부였고; 두부공장에서 청포물을 받아다가 국수를 말아 먹였다.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고 어머니가 어렵게 장사를 다녔지만 그런 것을 헤아리기에는 너무 어렸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을 했다. 그런데 중학교는 초등학교와 달랐으니 날마다 회비 독촉이었다. 회비 못 내서 얻어맞고, 복도에서 두 손 들고 벌쓰고, 쫓겨나고, 집에 가도 돈이 없는 것을 뻔히 알기에 괴정시장을 어슬렁거리다가 돌아가곤 했다.

 그런데 어쩌다 만나는 어머니는 언제나 콜록콜록 기침을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어머니는 그 기침을 멈추었다. “어머니가 기침 가래가 심했던 것을 보니 아마도 폐결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 더 이상 어찌해 볼 도리도 없는데 회비 독촉은 더 심해졌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학교를 그만두었다.

 괴정 시장에서 또래들을 만나 돈 벌 생각을 궁리하다가 제일 처음 시작한 것이 구두닦이였다. 처음에는 근처 다방을 돌아다니면서 구두를 걷어오는 찍새생활이었다. 구두를 닦는 딱새는 해 보지도 못 한 채 여름이 왔고 아이스케이크 통을 메고 ‘아이스케키’를 외치며 팔러 다녔다. 나중에는 신촌극장 휴게실에서 팔기도 했는데 별로 돈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 많은 형들이 담배를 주워오라, 근처 빵집에서 빵을 훔쳐오라는 등 별의별 것을 다 시켰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 그만 두고 집에 있으니까 옆집 아저씨가 카시미론 이불 장사를 하는데 따라가자고 했다. 괴정시장을 비롯하여 부산시내 전 시장을 아저씨를 따라 다녔다.

 연탄 배달도 하고 유리공장에도 다니고 트럭 조수생활도 했다. 트럭 조수를 할 때는 겨울이면 새벽에 나가서 시동을 걸기가 정말 힘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하지는 못했다. 차주가 차를 팔았던 것이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그럴 즈음 시장 분식집 사장이 그를 찾았다. 분식집 주인은 여러 해 동안 그를 지켜보았다며 자기와 같이 일을 해보자고 했던 것이다.

 동네 분식집이란 만물상이었다. 연탄 4개가 들어가는 화덕에다 12개를 한꺼번에 구울 수 있는 붕어빵이 주 메뉴였고; 찐빵과 도넛을 만들었다. 라면을 끓이고 자장면도 뽑고 겨울에는 단팥죽 여름에는 팥빙수를 팔았다.

 제일먼저 연탄을 갈아 넣고 붕어빵을 구웠다. 다음에는 찐빵과 도넛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자장면을 뽑았는데 몇 달 지나지 않아 그런대로 면발이 나왔다. 그는 무엇을 하든지 최선을 다했기에 주인도 여러 가지 기술을 잘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기술을 익혀 혼자서도 장사를 잘 하자 주인아저씨는 무슨 일인지 자주 집을 비웠다.
조만호씨 이야기는 2편에 계속.

* 이 내용은 문화저널21(
www.mhj21.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칼럼니스트 이복남 (
gktkrk@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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