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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문화저널]카페사장에서 빈털터리로 전락 ③
이름 : 조만호
날짜 : 2009-04-14 14:05:39 조회: 1593
"카페사장에서 빈털터리로 전락-조만호씨의 삶③
 

시각장애1급 조만호씨의 삶③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08-08-18 17:06:31


 친구의 제안으로 중국집을 정리하고 다대포에 술집을 차렸다. 코흘리개 구두닦이 소년이 서른세 살에 00카페 사장이 된 것이다. 무엇이든지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성격이라 장사를 잘 했다. 그런데 장사가 잘 되다보니 외상값 감당이 안 되었다. 고심하다가 동네 유지(?) 한사람을 형님으로 모시고 초빙을 했더니 외상 손님도 줄어들었다.

 장사는 잘했지만 날마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온갖 손님들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스트레스와 과로가 누적된 탓이었을까. 서른다섯 살의 어느 봄날 아침; 자고 일어나니 눈앞에 아지랑이 같은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아무리 눈을 닦고 비벼 보아도 그림자는 없어지지 않았다. 다음날도 마찬가지라 근처 안과를 찾았는데 별 이상은 없다고 했다. 그날 밤 다시 손님들과 술을 마셨고 아침에 일어나니 영 눈이 침침했다. 할 수없이 종합병원에 갔더니 망막박리라고 했다. 망막이 많이 떨어져서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카페는 임시휴업 15일이라는 팻말을 붙여놓고 1주일 뒤에 입원을 했다. 수술 날짜를 잡아주는 담당교수가 쯧쯧쯧 혀를 차는 것을 보니 불안했다. 아버지와 조카들; 아내와 아이들을 뒤로하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전신마취로 수술을 했고 간호사가 방귀 나오고 난 뒤에 뭘 먹으라 했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닥치는 대로 집어 먹었다.

 다음날 붕대를 풀었는데 수술은 실패였다. 사물이 반만 보였던 것이다. 며칠 후 재수술을 했다. 그래도 잘 보이지 않아 다시 또 재수술을 해야 했다. 봄에 15일 임시휴업을 내걸고 입원을 했는데 여름이 다 갈 때까지 전신마취를 세 번이나 했고 부분마취; 레이저 등 20여 차례나 수술을 받아야 했다.

 어느 날 담당교수가 “난데없이 ‘결혼은 했느냐’ 묻길래 아하 가망이 없구나 싶었습니다. 퇴원을 해서도 재발방지를 위한다며 가스와 오일을 넣고 엎드려서 대가리 처박고 6년을 견뎠습니다.”

 장모와 아내의 부축을 받으며 퇴원을 했다. 장모는 한숨이고 아내는 눈물바람이었다. 장사를 다시 시작해보려 해도 앞이 보이지 않으니 할 수 없이 시설비도 못 건지고 카페는 처분을 했다. 그동안 명절이 되면 아들의 옷은 못 사 입혀도 조카들의 새 옷은 사 입혔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신평에다 조그만 문구점을 차렸다. 집세 낼 날짜는 다달이 어김없이 돌아오는데 장사는 안 되고 재고는 쌓이고; 그야말로 식구들 입에 거미줄을 칠 지경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장입네 하고 넥타이 메고 꺼떡거리던 놈이 하루아침에 눈이 멀어 끼니 걱정을 해야 하다니; 사람들 만나기가 싫었고 신평을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동사무소를 찾아 갔더니 학장동 임대 아파트를 알선 해주었다. 학장으로 이사를 하고 팔다 남은 문구류는 리어카를 하나 사서 앵글로 선반을 만들어 그 위에 싣고 아파트 입구에서 장사를 했다. 관리실에서 장사를 못하게 해서 여기저기 쫓겨 다니다가 입구 한 모퉁이에 자리를 잡았다. 공책 도화지 등 종이류는 너무 무거워 리어카를 밀고 다니기가 힘이 들어 나중에는 경운기를 하나 구해 그 위에 싣고 다녔다.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하루도 안 빠지고 장사를 했는데 공책 볼펜 등 문구류와 명절이면 화약이나 풍선도 팔았다. 추억의 과자로 쫀득이 아폴로 라면땅 등 수백 가지를 진열대에 차려 놓았는데 눈이 보이지 않았음에도 진열대가 저절로 머릿속에 그려져서 아내가 말만하면 즉각 찾아 주었다.

 그런데 IMF이후 학교에서 교재를 나눠주면서 장사가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그 즈음 맹인복지관에서 사람들이 찾아와서 재활교육을 받아 보라고 했다. 사실은 1급 시각장애인임에도 용납이 안 되어 “나는 맹인 되기 싫다. 마 이대로 살란다.”며 고집을 부렸다. 그런데 점점 장사가 어려워지자 ‘지압을 하면 밥은 먹고 산다고 하던데’ 싶어 귀가 솔깃해졌으나 3년 동안 무얼 먹고 사나.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1년 동안 재활교육을 받고 검정고시 준비를 하고 합격이 되면 2년 동안 안마수련원에서 공부를 해야 했던 것이다. 검정고시를 한 번에 붙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러나 점점 더 장사가 안 되니 더 이상 망설일 수가 없었다. 맹인복지관 재활팀에 들어갔다. “20대부터 60대가지 12명이었는데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노 싶을 만큼 각양각색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탁구 야국 등 놀이를 했다. 해보니까 재미도 있었다. 점자도 배웠다. 보행훈련도 했다. 혼자서 지팡이 짚고 다니는 것 말이다.

 “처음 지팡이 짚는 법을 배우고 걸어 보니까 어찌나 눈물이 나든지...” 절망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을 했다가 강영우 박사의 비디오를 보면서(들으면서) 빛과 소금이 되겠다는 의욕이 생겼다.

 당시 중졸 검정고시 반에 다섯 명이 있었는데 3개월이 지나자 재활팀을 지도하는 김장민 선생이 검정고시를 쳐 보라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자신이 없어 못하겠다고 했다. 이번에 안 되면 다음에 또 하면 되니까 해보라고 오히려 김 선생이 사정을 했다.
조만호씨 이야기는 4편에 계속.

 * 이 내용은 문화저널21(www.mhj21.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칼럼니스트 이복남 ( gktkrk@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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